학회 | 한국공업화학회 |
학술대회 | 2012년 봄 (05/09 ~ 05/11, 김대중컨벤션센터) |
권호 | 16권 1호 |
발표분야 | 초청강연 |
제목 | 광주, 전남의 전통문화 |
초록 | 이제까지 호남문화나 南道文化의 성격, 그리고 호남인들의 심성을 다룬 글들 중에는 특정분야의 문화상을 설명하여 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일부 편향적인 강조점이 부각되기도 하였다. 예컨데 호남문화의 본질을 流配文化라는 관점에서 보고 恨으로 얼룩진 시각으로 이해하는 저항일변도의 논리 같은 예들은 그러한 것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오종일교수는 “호남은 온화한 기후와 비옥한 토양을 바탕으로 성장한 온후한 민심과 그를 상징하는 문화가 있었다. 백제시대에 있어서는 일찍이 항해술이 발달하여 중국대륙과의 교역은 물론 일본문화의 관계에 있어서도 근원에 있어서 그 원류가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 조선조의 사림의식이나 주자학의 발전은 호남인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많으며, 조선조의 실학이 성장하여 완성된 곳 또한 호남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문학 예술은 물론 판소리나 남도창 역시 호남만이 지니는 고유성이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국가가 위난을 당했을 때 구국의 충절을 부르짖고 구국전선에 남 먼저 뛰어든 의병활동의 온상이요 중심을 이룬 곳도 호남이었다.”라고 말하였다. 또한 지춘상교수는 호남문화의 특성을 포괄적 의미로 구분하여 藝術性, 風流性, 民衆性등으로 대별하였고 호남인의 인성을 포용성, 의기, 순후성이라 하였다. 무어라 해도 호남은 자타가 공인하는 예향이다. 그러나 다른 어느 곳보다도 살기 좋은 천혜의 자연조건을 가진 것에 반하여 역사적으로는 백제에 의한 마한의 망국, 신라에 의한 백제의 멸망, 왕건에 의한 견훤의 몰락과 고려왕조의 건립, 그리고 계속되는 고려 왕건의 훈요십조와 조선시대 가렴주구의 온상으로 억압받고 피해를 입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국민여론조사에 의하면 타지방사람들이 광주,전남지방을 인식할 때 “藝鄕”이라고 부르는 것에 훨씬 높은 응답분포를 보였다. 이처럼 광주, 전남지방에 대한 이미지는 예향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장차 이 지역발전을 위하여서는 문화를 근간으로 하는 발전과 환경친화적인 산업발전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렇다면 광주, 전남지방에는 어떠한 문화유산이 있는가? -. 첫째는 천혜의 자연자원을 들 수 있겠다. 전남지방은 기후가 평균14.2도로 따뜻하고 넓은 토지가 비옥하여 일찍부터 농경문화가 발달하였으니 우리나라의 주된 穀倉의 역할을 하였다. 또한 바다에 접하여 전국에서 가장 긴 해안선(6,032km, 전국의 47%)과 가장 많은 섬(1,954개, 전국의 62%)을 가지고 있는 해양자원왕국이다. 갯벌은 세계5대 갯벌로 전국의 40%에 해당하는 1,017평방킬로미터에 해당한다. 수려한 해안의 아름다움과 아직은 그다지 훼손되지 않은 다도해의 무궁무진한 해양자원들, 산세가 아름다운 지리산과 월출산, 단풍으로 물들은 내장산, 불교유적이 가득한 조계산, 나주평야의 젖줄인 영산강, 가장 물이 맑다는 섬진강, 청정한 바다 속 깊이를 즐길 수 있는 홍도와 백도, 완도의 명사십리, 넓게 펼쳐진 갯벌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 둘째는 고대문화유적이다. 이 지방은 역사적으로 馬韓과 百濟의 옛터로서 사람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살았던 풍요로운 고장으로서 농경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영산강을 중심으로 한 넓은 평야에서 이루어진 농경문화를 비롯하여 육로를 통하지 않고 바닷길을 이용하여 중국의 선진문화를 가장 먼저 받아들였으며 일본에 문화를 전파하였다. 즉 서남해안의 바닷길과 내륙지방의 강줄기를 따라 오르내리는 길은 전남지방의 고대문화가 성장하는 배경이자 중국과 일본으로 향한 문화전파의 루트였다.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수천 기에 달하는 고인돌, 영산강 유역의 거대한 옹관묘, 前方後圓形 古墳, 선사시대인들의 다양한 住居址, 근래에 발굴된 마한의 고분 등은 우리나라의 선사문화를 이해하는데 대단히 귀중한 유적이다. -. 셋째는 불교문화유적이다. 전남지방에 불교가 도입된 것은 타지방에 비하여 다소 늦었으나 후대에 들어서는 오히려 더 성하였다. 백제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들이 발견되고 있으나 대부분 통일신라 이후의 것들이다. 그러나 심산유곡에 자리잡은 천년고찰들은 수많은 고승대덕들을 배출한 부처님의 도량으로 손색이 없는 빼어난 것들이다. 승보사찰인 송광사, 통일신라의 유물로 가득한 화엄사, 태고종의 宗刹인 선암사, 통일신라 때 아홉 山門 中의 하나인 가지산문의 보림사와 동리산문의 태안사, 백련결사의 만덕사, 천불천탑의 운주사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 넷째는 선비문화유적이다. 이를 유교문화라고도 할 수 있겠다. 백제 때의 학자 왕인은 영암 사람으로 많은 책을 일본에 전해 주고 그들을 교화시켜 일본의 개명에 기여하였다. 조선왕조 후기에 현실개혁을 제창하여 일어난 실학자로서 정약용은 강진에 머물면서 저술을 하였으며, 정두원은 중국에서 자명종과 세계 지도를 얻어와 서양의 문물을 소개하였으며, 위백규는 과학과 기계에 대한 이론 같은 이 지방에서 가장 많이 필요한 현실 개혁안을 내놓았다. 또 유학자이며 정치가이며 문장가로 유명한 정철과 윤선도는 저마다 「성산별곡, 사미인곡」과 「어부사시사, 오우가」등을 남겨 국문학의 보배가 되게 하였다. 기대승은 이황과 ‘사단칠정론’을 벌여 성리학을 한층 진보시켰다. -. 다섯째는 민속문화이다. 줄다리기와 강강술래, 고싸움, 씻김굿과 당굿, 장승제, 진도를 비롯한 섬 지방에서 나타난 각종 민속은 우리민족의 면면한 삶의 생생한 흔적을 보여주는 토속적인 민속문화의 보고이다. 집안이 잘 되기를 비는 집굿에는, 정초에 집안이 태평하기를 비는 도신굿, 새집 짓고 터 올리는 성주굿, 그 밖에 지왕맞이 굿 - 따위의 수없이 많은 종류가 있다. 죽은 이의 넋을 극락으로 이끌어 가는 씻김굿이 많은 것은 전라남도 토박이들의 조상과 친척에 대한 풍부한 인정을 말해 준다. -. 여섯째는 예향이라는 애칭을 갖게 하는 다양한 예술적 소양이다. 음식 맛이 좋고 인심이 후하며 사람들이 멋을 알고 풍류를 즐길 줄 아니 예향이라 할 만 하다. 넓은 대지에서 생산되는 풍요로운 농산물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삶의 각박함을 잊고 풍류를 즐길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서편제로 유명한 판소리와 육자배기, 신명나는 농악과 농요, 보통사람이면 칠 줄 아는 난초 등의 수묵화와 서예 등은 우리지방 사람들이 빼어난 예술적 감각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소치, 미산, 남농 許氏三代로 이어지는 남종화의 화맥은 남도의 멋을 표현하는데 손색이 없다. 또한 오지호로 비롯되는 서양화단 역시 풍요롭고 따사로운 南道性을 지닌 회화를 대표하고 있다. -. 일곱째는 전라도 특유의 감칠맛 나고 풍부한 음식이다. 도서지방에서 생산되는 수많은 젖갈, 천일염, 간장과 된장, 고추장을 소재로 만들어진 풍부한 음식문화는 이 지방사람들의 풍요로움과 넘쳐흐르는 정을 느끼게 한다. 다양한 젖갈로 담근 김치를 보면 전남지방의 음식문화를 알 수 있다. 동해의 깊고 맑은 바다의 물고기보다는 서해의 갯벌 주위에서 잡은 고기가 더 맛있다 한다. 신안 앞 바다의 홍어, 법성포의 굴비, 벌교의 꼬막, 무안의 세발낙지, 무안의 밤 고구마, 해남의 물 고구마, 무등산 수박, 김 등 각종 해산물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근래에는 떡갈비, 삼합 등 새로운 음식이 전라도의 맛을 더하고 있다. -. 그 외에도 일본에 문화를 전한 영암의 왕인박사 유적, 통일신라시대 바다를 제패한 장보고와 완도의 청해진유적, 강진의 고려청자 도요지, 진도의 삼별초 항쟁지, 임란 때의 수군과 승병 또는 의병들의 항쟁유적, 초의선사를 비롯한 차 문화, 담양과 무등산 주변의 시가문화권과 원림문화, 고산 윤선도와 관련된 연동과 보길도유적, 다산 정약용의 다산초당 등 가히 전남은 전통문화의 보고인 셈이다. 그렇다면 전라도 문화의 멋과 맛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이는 풍요와 질곡으로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恒産이 있어야 恒心이 있듯이 여유가 있어야 멋이 나오는 것이다. 제대로 된 가락이라도 할려면 논밭께나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양쪽의 극단은 서로 만난다고 한다. 멋은 너무나 슬픈 恨에서 비롯되기도 하고 여유에서 나오기도 한다. 恨을 분출한 소리와 춤사위, 붓끝으로 표현되는 담채의 미, 시간을 체념한 기다림의 情恨, 이러한 것들이 멋으로 나타나고 이를 가리켜 藝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한스러운 심성이 풍류로 표출되어 예술로 승화된 것이다. |
저자 | 천득염 |
소속 | 전남대 |
키워드 | 광주; 전남; 전통문화 |